역사

1946년 경성대학 법문학부에 한국 최초의 언어학과가 설치되었다. 이어 언어학과는 국립서울대학교 설치령(1946.8.22)에 의거하여 문리과대학에 귀속되었고, 다시 1975년 서울대 종합화 10개년 계획에 따라 인문대학에 귀속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55년 4월 1일에는 석사과정이 개설되고, 1972년 3월 1일 박사과정이 개설되어 학제상 완전한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여기에서 언어학과 55년의 역사를 크게 초창기, 문리과대학 시기, 인문대학 시기로 나누어 그 줄기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언어학과의 설치를 강력히 주장하고 노문학과의 폐과에 이어 언어학의 중요성을 내세우며 추진한 분을 일석 이희승 선생이었던 것으로 전한다. 언어학과가 설치되고 첫 주임교수로 부임한 이는 일본동경대학 언어학과 출신인 유응호 교수(1946–1950.6)였다. 그러나 국립서울대학교 설치령이 내려지고 소위 국대안 반대의 혼란이 계속되어 실제로 언어학과의 강의가 시작된 것은 1948년 3월부터였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기록에 의하면 1948년 3월에 2명, 1949년 3월에는 모두 12명이 편입 또는 입학하여 등록하였다. 이 당시의 교과 내용을 보면 인구어 비교언어학과 서구의 구조주의 언어학이 강의 내용의 주류를 이루고 있고 블룸필드 학파의 언어이론에도 눈을 돌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극심한 정치, 사회적 혼란의 와중에서 1950년 초에 김선기 교수(1950.1–1957.10)가 새 주임교수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곧 한국전쟁으로 다시 어려운 시기를 맞게 되었다. 부산 동대신동의 막사에서도 강의는 계속되었으나 정상적인 교육과 연구가 재개된 것은 1953년 9월 서울로 다시 옮긴 뒤부터였다. 런던대학에서 음성학을 전공한 주임교수를 맞아 언어학과에서는 자연히 음성학, 음소론 분야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여 여진어, 만주어, 몽고어, 터키어 등의 강좌를 개설하게 되었다. 1956년에 김선기 교수는 한국언어학회를 창립하였다.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전임교수가 점차 보강되면서 언어학과는 그 제2기의 기틀이 잡히게 되었다. 이 문리대 시기의 언어학과를 이끌어 온 교수들은 다음과 같다. 김방한 교수(1956.6.15), 허웅 교수(1957. 5. 21), 신익성 교수(1960. 12. 15), 박형달 교수(1967. 3. 15), 이현복 교수(1970. 8. 5).

 

우리 학계는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기술언어학의 편향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다. 언어학과에서도 1954년부터 기술언어학 강의가 시작되었으나 서구의 구조주의 언어학에도 여전히 고른 관심을 보이는 교과과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시기의 언어학과의 동정을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허웅 교수는 국어학과 언어학은 별개의 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늘 강조하면서 언어학의 제 이론을 수용하여 국어학을 발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일반어어학을 건설하는 것이 언어학의 바른 길이라는 생각으로 뒤에 방대한 저서로 나타나는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었다. 한편 김방한 교수는 몽골어학과 알타이어학 분야를 담당, 연구를 진행하여 뒤에 국어의 계통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이와 병행하여 언어학의 여러 이론을 연구하여 우리나라 언어학의 시야를 넓히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신익성 교수는 라틴어, 인구어학, 구조의미론 분야를 담당하면서 서구의 언어 이론들을 연구하여 우리 언어학의 폭을 넓혀 왔다. 문리대 시절 후기에 부임한 박형달 교수는 보편적, 과학적 설명을 위한 새로운 모형을 한국어를 중심으로 하여 정립하는 작업을 발전시켜 온 결과 출발점이 되었던 기능, 구조주의(또는 변형, 생성문법)의 관점이 가지는(표면의 테두리 안에서 심층을 주장하는) 사실상의 표면 위주의 방법을 탈피하여 언어활동을 심층분석하는 ‘귀스타프 기욤’의 심리/정신 역학의 역학적 관점과 합류하게 되었다. 더욱 나아가 이 이론의 단계가 물리적, 전통언어학적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점을 비판하여 ‘통일화된 이론언어학의 체계’를 정립하고 여타의 비역학적 관점과 비교하는 ‘비교이론언어학’의 기틀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이현복 교수는 음성학, 음운론 분야를 담당하면서 일반음성학과 한국어 음성학 및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에 관한 조음 및 실험음성학적인 연구를 진행,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업적을 쌓아 왔으며, 한국어와 영어의 표준발음 연구와 보급에도 힘써 왔다. 특히 이 교수의 노력으로 1975년 언어학과 안에 우리나라 최초의 음성학 실험실을 마련하고 미니컴퓨터 및 기본적인 음향분석 기자재를 갖추어 실험음성학의 연구와 교육을 활성화한 것은 특기할 일이다. 이와 같이 문리대 시기의 언어학과는 경제적 곤란과 사회적 혼란이 겹친 상황 속에서도 착실히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기틀을 잡은 시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학계가 구조주의 언어이론을 수용하여 언어 연구의 기틀을 잡아가고 있는 동안에 그간 한국의 언어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온 미국의 언어학계는 변형, 생성이론의 등장으로 혁명적 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우리 언어학계는 또다시 이 새로운 사조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다.

 

1975년 서울대 종합화 계획에 따라 언어학과는 그간 어학연구에 봉직하고 있던 장석진 교수(1975. 3. 1)와 이정민 교수(1975. 3. 1)를 맞이하여, 우리 언어학과에 변형, 생성 이론을 수용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최근에는 성백인 교수(1982. 9. 23), 문양수 교수(1986. 3. 1), 김윤한 교수(1990. 9), 권재일 교수(1994. 11. 17)가 부임하여 역사언어학과 음운론을 각각 담당하게 되면서 음성학, 음운론 분야, 통사-의미론 분야 및 역사-비교언어학 분야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는 교수 요원의 구성이 이루어졌다.
언어학과는 그간 1950년 첫 문학사를 배출한 이래 1986년 2월말 현재 521명의 문학사를 배출하였으며 현재의 재학생 수는 90명에 이른다. 그간 입학 정원이 10명이던 것이 1981년부터는 30명으로 증원되었다가 1985년부터 20명으로 재조정되었다. 한편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이 개설된 이래 그간 150여명에 이르는 문학석사와 구제 문학박사 2명을 포함하여 70여명의 문학박사를 배출하였고, 현재 대학원 재학생 수도 수십명에 이른다. 1996년 현재 언어학과의 학부나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대학의 교수나 연구원으로 재직하는 학자는 9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언어학과 동문 교수협의회’(1993년 창립, 대표: 이현복)가 집계하였다. 근년에 대학원생도 수가 늘어 매년 각각 10명 내외의 석-박사 과정의 대학원생을 받아 가르치고 있다. 대학원생들의 전공은 음성학, 음운론, 문법론, 의미론, 역사비교언어학 등 전통적으로 언어학에서 다루어 온 분야에서부터 텍스트학, 전산언어학, 사회언어학 등 상대적으로 새로운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한편 현재 언어학과에 기반을 둔 학회로는 한국언어학회(1956년 창립, 대표: 문양수)와 대한음성학회(1976년 창립, 대표: 이현복), 한국인도유럽언어학회(1984년 창립, 대표: 김윤한) 및 남방문화연구회(1995년 창립, 대표: 이현복)가 있다.
2000년에는 언어정보연구센터를 설립하여 현재 언어정보구조처리연구실, 음성음향정보연구실, 언어비교대조연구실을 산하에 두고 있다.
- 서울대학교 50년사 하권, pp.25-27